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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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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적인 구성물을 우리는 흔히 ‘판타지’라고 부른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햄릿〉에 등장하는 대사를 빌려와 판타지를 “진리라는 잉어를 낚아 올리는 허구적인 미끼”라고 설명했다. 판타지를 우리 무의식의 표현으로 보기도 한다. 우리가 억압하는 영역, 즉 무의식의 영역과 꿈의 세계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결국 판타지란 우리의 꿈과 무의식 속에 그럴듯하게 자리 잡고 있는 세계다. 마법사들이 휘젓고 다니는 〈해리 포터〉 시리즈 같은 판타지가 아닌, 현실 세계에 있을 법한 판타지 영화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 감독 웨스 앤더슨, 2014)을 꼽을 수 있다.
미국인 감독인 웨스 앤더슨은 세련되고 스타일리시한 연출로 유명하다. 어느 소년 소녀 커플의 일탈과 로맨스를 다룬 〈문라이즈 킹덤〉(Moonrise Kingdom, 2012)에서는 화면을 철저하게 좌우대칭으로 맞춰서 찍기도 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2014년 베를린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은곰상(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제87회 미국 아카데미상에서는 작품상, 감독상을 포함한 9개 부문 후보에 올라 미술, 음악, 의상, 분장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그만큼 작품의 비주얼 면에서 압도적이다. 또한 골든글로브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131개 수상 및 219개 노미네이트를 기록하며 찬사를 받았는데 수상에 이르지 못한 후보로는 각본상과 감독상이 많았다.


영화는 겹겹의 액자식 구성이다. 한겨울 아침, 한 소녀가 공동묘지로 들어간다. 어느 작가의 동상 앞에서 소녀는 멈춰 서는데, 그녀가 들고 있는 책의 제목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다. 커버 뒷면에 책의 저자 사진이 있다. 그 저자가 1985년 카메라를 응시하며 인터뷰를 하는 장면으로 바뀐다. 작가의 창조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예전에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겠다고 말한다.

영화의 시점은 1968년 젊은 작가(주드 로) 시절로 옮겨진다. 그는 이전의 영광을 뒤로한 채 외로운 이들만 가끔 찾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머물고 있다. 이곳에서 호텔 주인인 ‘제로 무스타파’(F. 머리 에이브러햄)를 만나게 된다. 무스타파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시대에 따라 화면 비율 달리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화면 비율을 특이하게 사용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 비율을 다르게 하는 것이다. 현실 파트와 1980년대 파트에서는 1.85:1 비율을 쓴 반면, 1968년 시퀀스에서는 2.40:1을 사용하고 있다. 주된 이야기가 펼쳐지는 1930년대 부분은 ‘아카데미 비율’로 불리는 1.37:1로 구성했다.

즉, 액자가 하나씩 겹쳐질 때마다 다른 화면 비율 및 크기를 보여주는데, 이는 해당 장면이 배경으로 하는 시대에 주로 쓰이던 영화의 화면 비율이라고 한다.

1932년 가상의 주브로브카 공화국에 있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지배인 ‘무슈 구스타브’(레이프 파인스)가 주인공이다. 그는 엄청난 갑부인 ‘마담 D’(틸다 스윈턴)를 그녀의 집인 루츠 성으로 떠나보내는 중이다. 둘은 친구이자 비밀스러운 연인 관계다. 마담 D는 이번에는 영영 서로 못 만날 것 같다며 가기 싫어하지만, 구스타브가 달래서 불안한 상태로 호텔을 떠난다.

구스타브는 ‘제로’(토니 레볼로리)라는 이름의 신입 로비 보이(lobby boy)가 수습 기간으로 일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바쁘게 이동하면서 구스타브는 로비 보이 면접을 본다. 간단하게 경력, 학력, 가족 수를 물어보는데 전부 제로(0)이다.

구스타브 : 왜 로비 보이가 되려 하지?
제로 :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그랜드 부다페스트인데요? 대단한 곳이잖아요.


시종일관 딱딱한 태도였던 구스타브는 “훌륭한 대답이야”라며 흐뭇해하고 제로는 로비 보이로 채용된다. 제로는 일주일에 0.5일만 쉬면서 구스타브의 혹독한 레슨을 받으며 빡빡한 호텔 생활을 시작한다.

구스타브는 일류 컨시어지로서 호텔을 관리함과 동시에 호텔을 찾는 나이 지긋한 귀부인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제로는 구스타브의 고객인 귀부인들이 “돈 많고 늙고 불안정하며, 허영심 많고 외로웠다”고 묘사한다. 구스타브 스스로 “내 나이가 되면 젊은 여자뿐 아니라 나이 든 여자도 마다치 않는다. 사실 난 나이 든 여자가 더 좋다”고 말하기도 한다.

구스타브는 또한 예의와 교양을 대단히 중시하는 인물이다. 항상 시를 읊는 로맨티시스트이기도 하다. 호텔 직원들의 식사 시간에도 여러 지시 사항과 더불어 시를 수시로 읊어대곤 하는데 직원들은 시가 나올 때가 되면 허겁지겁 음식을 집어먹기 시작한다.

제로는 로비 보이 생활을 하며, 인근에 있는 케이크 가게 ‘멘들스’에서 일하는 ‘아가사’(세어셔 로넌)라는 여자와 사귀게 된다. 몇 번 만나지 않아 제로는 극장에서 청혼을 하고 아가사 또한 전혀 망설임 없이 승낙한다.

1930년대의 이야기는 모두 5부의 소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이 1부 무슈 구스타브에 해당하는 내용이고, 이어 2부 마담 셀린느 빌뇌브 데고프 운트 탁시스(즉, 마담 D), 3부 ‘체크포인트 19’ 교도소, 4부 십자열쇠협회, 5부 두 번째 유언의 사본 등으로 이어진다.

2부에서 본격적인 내용이 전개된다. 구스타브와 제로는 마담 D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기차를 타고 그녀의 집으로 향하던 중 기차가 서고 군인들이 열차 객실로 들어와 신분증을 요구한다.

제로가 서류를 제시했음에도 무국적 이민자라는 이유로 군인들이 체포하려 하자 구스타브는 “이럴 순 없다. 저 친구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직원이다”면서 강력히 항의한다. 호텔에 대한 구스타브의 높은 자부심을 알 수 있다. 또한 무장한 군인들에게 “빌어먹을 파시스트 놈들! 당장 내 로비 보이에게서 손 떼!”라며 소리 지르다 얻어맞는다. 두 주인공 사이에 유대감이 형성되는 장면이다.

둘 다 군인들에게 쫓겨날 위기의 순간에 ‘헨켈스’ 경위(에드워드 노턴)가 나타나 제로에게 특별 여행허가서를 떼 주면서 그들을 풀어준다. 헨켈스가 어리고 외롭던 시절에 구스타브가 잘 대해준 인연이 있다.

루츠 성에 도착한 구스타브와 제로는 마담 D의 시신을 확인한 뒤 그녀의 유언을 읽어주는 현장에 참여하게 된다. 그곳에는 재산을 나눠 갖기 위해 멀리서 온 친척들로 버글대고 있었다. 그녀는 대부분의 재산을 아들 ‘드미트리’(에이드리언 브로디)에게 남겼는데, 유독 〈사과를 든 소년〉이란 그림만 구스타브의 몫으로 돌렸다.

작중에서는 이 그림이 매우 유명하고 가치 있는 작품으로 나오고, 구스타브에 반감이 있는 드미트리는 그 그림이 구스타브에게 넘어가는 것을 방해한다. 구스타브와 제로는 루츠 성의 집사 ‘서지 X’(마티외 아말리크)의 도움으로 〈사과를 든 소년〉을 몰래 가져 나온다. 호텔로 돌아와 창고에 성공적으로 숨기는데, 헨켈스 경위가 이끄는 경찰들이 구스타브를 체포하려 호텔을 찾는다. 마담 D의 살해 혐의다. 드미트리의 계략으로 구스타브는 체포돼 체크포인트 19 교도소에 수감된다.


역대급 호화 캐스팅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다른 영화의 주연급 배우들을 대거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와 〈옥자〉로 한국 관객들에게도 낯익게 된 틸다 스윈턴은 모든 소동의 중심에 있는 마담 D 역할을 위해 80대 노파로 분장한 채 짧고 강렬하게 등장했다가 홀연히 사라진다.

드미트리 역의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피아니스트〉(감독 로만 폴란스키, 2002)로 제75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의 영광을 안았던 배우다. 미남 배우 주드 로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고, 그와 더불어 영화 앞뒤에 살짝 등장하는 제로 무스타파 역의 F. 머리 에이브러햄은 영화 〈아마데우스〉(감독 밀로시 포르만, 1984)에서 살리에르 역을 맡았던 관록의 배우다.

드미트리의 부하이자 청부 살인자인 ‘조플링’ 역의 윌럼 더포를 비롯해 빌 머리, 오언 윌슨, 하비 카이텔도 짧게 등장한다. 〈브루클린〉(감독 존 크롤리, 2016)으로 연기력을 인정받는 세어셔 로넌의 풋풋한 모습도 인상적이다.

체크포인트 19 교도소에 수감된 구스타브는 교도소 생활을 성실히 하면서 그의 감방 친구들과 함께 탈옥 계획을 세운다. 멘들스 가게의 아가사는 빵 안에 땅을 팔 도구들을 넣어서 만들고, 제로가 그것들을 구스타브를 면회할 때마다 건네주면서 탈옥을 도와준다.

탈옥에 성공한 구스타브는 제로와 함께 누명을 벗기 위해 ‘십자열쇠협회’의 도움을 받는다. 십자열쇠협회는 각국 호텔 지배인끼리 연결된 조직이다. 둘은 드미트리의 부하인 조플링의 추격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제로의 슬픈 개인사가 드러난다. 제로가 살던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 가족이 모두 죽고 말았고, 간신히 살아남은 제로는 혈혈단신 이 나라로 온 것이었다. 그 이야기에 구스타브는 자작시를 읊으며 제로와의 우정을 맹세한다.

조플링으로부터 간신히 살아남은 둘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숨겨 놓은 그림을 찾아서 도망칠 계획을 세우고 아가사의 도움을 받아 호텔에 잠입한다. 그곳에서 드미트리 일당과 경찰들 간에 총격전이 벌어지고 그 와중에 제로와 아가사는 그림 〈사과를 든 소년〉 캔버스 뒤쪽에 숨겨져 있던 기밀문서를 발견한다. 그것은 마담 D의 두 번째 유언장 사본이었고, 거기에는 마담 D가 자신의 모든 재산을 구스타브에게 준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구스타브는 모든 혐의를 벗고, 자신의 어머니 마담 D를 살해한 드미트리는 모습을 감춘다. 구스타브는 제로를 호텔의 후계자로 임명하고, 제로와 아가사는 소박한 결혼식을 올린다.

구스타브와 제로, 아가사가 기차를 타고 루츠 성으로 향하는데 열차가 갑자기 멈추고 영화 초반에서처럼 군인들이 들어서며 서류를 요구한다. 구스타브는 특별 여행허가서를 보여주지만 군인은 그 허가서를 찢어버리고 제로를 가격한다. 군인에게 항의하며 덤빈 구스타브는 총에 맞아 죽고, 구스타브가 받은 마담 D의 재산은 제로가 물려받는다. 아가사는 이후 그녀가 낳은 제로의 아들과 함께 독감에 걸려 죽게 된다.


눈이 호강하는 비주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미니어처 기법이 상당히 많이 사용된 영화다. 호텔 외관 자체가 정교한 미니어처 세트이고, 구스타브와 제로가 그림을 찾아 떠날 때 등장하는 케이블카와 스키 추격 장면 대부분을 미니어처 세트에서 촬영했다. 덕분에 굉장히 아기자기하고 동화 같은 느낌을 낼 수 있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카메라 움직임 하나하나를 정확히 계산해서 촬영했다. 감독 특유의 대칭 구도와 평면적 화면 구성, 화려한 색감이 두드러지고, 이러한 비주얼은 마치 그림책의 일러스트를 보는 듯한 분위기를 영화 곳곳에서 자아낸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모두 허구이지만 시대적 배경은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역사에 걸쳐 있다. 그래서 제목에 ‘부다페스트’가 들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파시즘의 광풍이 불던 시대상이 강압적인 군인들의 모습으로 담겨 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유산을 둘러싼 유쾌한 모험담을 통해 역사적 풍자, 과거를 추억하는 향수, 홀로 남은 자의 쓸쓸함 등을 담아내고 있다. 또한 독특한 일관성을 갖춘 한 중년 남자와 로비 보이 사이의 끈끈한 우정으로도 읽힐 수 있다.

이 영화는 오스카상에 빛나는 미술, 의상과 분장은 물론, 독창적인 영상과 예측 불가능한 스토리 전개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영화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허영심 가득하나 특유의 품위를 견지한 로맨티시스트 무슈 구스타브의 매력 또한 잊기 힘들 것이다.Scene in English 명대사 한 장면

영화 끝부분에서 내레이션을 맡은 젊은 작가와 제로 무스타파가 짧은 대화를 나눈다. 무슈 구스타브로부터 거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제로 무스타파에게 “무슨 이유로 돈은 많이 들고 적자투성이인 이 비운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막대한 재산을 들여 맞바꾼 것인가?”라고 묻는다.
영화의 주인공인 구스타브의 품위에 경의를 표하는 제로의 모습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젊은 작가 : 질문을 용서하십시오. 결례가 되지 않았으면 하네요.

제로 무스타파 : 아니, 괜찮네.

젊은 작가 : 이 호텔이 그 사라져버린 세상, 말하자면 그의 세상과 선생님을 이어주는 마지막 끈입니까?

제로 무스타파 : 그의 세상? 아니. 그렇지 않아. 우리는 소명의식을 함께했지. 그러니 그럴 필요는 없었네. 아니, 이 호텔은 아가사를 위한 걸세. 우린 여기서 행복했네, 잠깐은. 솔직히 내 생각에 구스타브의 세상은 그가 들어서기 오래전에 이미 사라졌지. 하지만 말하건대, 그는 훌륭한 품위와 함께 그 환상을 분명히 지켜냈지. 올라갈 건가?

젊은 작가 : 아뇨, 더 있을게요. 굿나잇.

Forgive me for asking. I hope I haven't upset you.

No, of course not.

Is it simply your last connection to that vanished world - his world, if you will?

His world? No, I don't think so. You see, we shared a vocation, it wouldn't have been necessary. No, the hotel I keep for Agatha. We were happy here, for a little while. To be frank, I think his world had vanished long before he ever entered it. But I will say, he certainly sustained the illusion with a marvelous grace. Are you going up?

No, I'll sit for a little while.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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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naver21

등록일2021-02-22

조회수1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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