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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것들의 귀환

몇 해 전 진주교육청이 이전을 하면서 새로 지어졌다.

 

거울 창이 전면을 이루고 있는 큰 덩치의 건물이다.

 

바로 앞에 동생이 가게를 하고 있어 그 거리를 자주 찾았다.

 

어느날 보니 교육청 뒤쪽에 붉은 벽돌의 긴 건물이 있었다.

 

딱 봐도 오래 되어 고풍스러웠다.

 

이런 건물이 진주에 있었나? 뭘 하던 곳일까?

 

오랫동안 비워둔 모양이지만 누추하지 않고 낡은 느낌이 좋았다.

 

신식 건물이 하루아침에 일어서는 요즘 용케 헐리지 않고 서 있는 게 고맙기도 하고,

 

혹시 곧 헐리지 않을까 불안하기도 했다.

 

동생과 건물 참 아깝단 이야기를 하면서 끼 있고 개성있는 젊은 친구들을 위한

 

공간으로 쓰면 딱인데 했었다.

 

요즘 방송국에서 근대 문화유산을 소개, 발굴하는 내용의 새 코너를 맡게 되었다.

 

보고 생각한 것도 인연이라고, 6-25 전쟁과 관련된 유산을 찾던 중 이 건물과 만나게 되었다.

 

1938년에 지어진 학교였고 이미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었다.

 

외벽에는 6-25의 총탄 상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1950년 당시 6-25 참전을 위해 청년들이 처음 징집돼 있던 장소였고,

 

그 뒤에는 인민군이 주둔해 있던, 이야기를 품은 건물이었다.

 

이번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한국의 근대유산(문화재 등록, 미등록 전부)이 얼마나 안타깝게 방치되고,

 

또 개발에 못 이겨 한순간에 허물어지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6-25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자들의 유해가 발견된 곳을 찾았다.

 

정부에서 돈을 문제로 유해를 안치할 장소를 만들어주지 않아 컨테이너 박스에 임시 안치되어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얼마 전,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김정후 작, 돌베개 출판사)' 라는 책을 접하면서

 

그러한 안타까움은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책에선 유럽이 산업유산을 어떻게 재생시키고 보존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도시에서 근대 산업 발전의 흔적을 찾아보면 철길이 빠지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과 화물을 실어 나르던 거대한 기관차의 시대는 가고, 도시 속 철길은 '폐선 부지'로 남았다.

 

프랑스 파리도 마찬가지다. 파리 12구에 가면 '프롬나드 쁠랑떼(나무로 만든 산책로)'라는

 

긴 산책로가 있다. 이곳 또한 펴선 부지였다.

 

세계 여러 나라가 폐선 부지에 대한 적절한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이곳 '프롬나드 쁠랑떼'는 획기적이었다.

 

1859년에 만들어져 90년 뒤인 1969년에 이곳을 지나던 기관차 운행이 중단되었다.

 

그리고 남겨진 건 폐선이 깔린 2만 여 평에 달하는 부지였다.

 

더군다나 지상에서 10여미터 높게 설치된 고가 철길이었다.

 

이곳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고민하는 데만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인상적인 것은 건축가와 학생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논의를 거듭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철로를 받치고 있는 다리에 난 72개의 아치 공간은 시에서 재활용 공모전을 통해 활용 방안을 찾았다.

 

통유리 상점과 공방들이 들어선 것이다. 부럽다. 

 

해당기관에서만 업무가 다루어지는 한국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파리의 건축물들이 창의성을 인정받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이렇게 해서 파리 12구에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공중 산책로가 탄생되었다.

 

중요한 것은 기존 철길의 구조적 특성을 그대로 살렸다는 점이다.

 

철길이 도심을 관통하고 있고 지상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점을 십분 활용해 

 

4KM 가 넘는 산책로를 거닐면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파리의 도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긴 산책로는 구간마다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해 걸으면서 다양한 기분을 맛보게 한다.

 

철길 위의 호수, 생각만 해도 상쾌하다. 터널 또한 그대로 살려냈다.

 

 

2년 전, 진주역이 옮겨지면서 기존의 선로를 뜯어냈다.

 

현재 그 자리엔 자전거 도로가 조성 중이다.

 

도로 중간에 기차 터널이 남아있는데 전쟁 때 폭격을 맞았다고 해서 답사를 가보았다.

 

도로를 달리다 만나는 터널은 제법 운치 있었다.

 

조금 아쉬웠던 건 기존의 돌벽과 벽돌 천장에 스프레이 시멘트를 분사해 멋이 한풀 꺽인 것이다.

 

안전을 추구하되 새것이 갖지 못하는 오래됨의 미적 가치도 함께 잡고 간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공간을 시민들에세 돌려주려는 노력은 기분 좋았다.

 

 

유럽에서는 근대유산을 쉬이 허물지 않는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서 잘 보존할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한다.

 

감옥이 호텔이 되고, 탄약공장이 미디어 아트센터로, 

 

탄광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는 놀라운 일들을 빚어낸다.

 

한 공간이 버려지면 그 주변도 폐허로 물든다.

 

큰 공간이라면 그 범위는 더 넓어진다. 하지만 그곳의 정체성을 살린 채 어떻게 재창조 할 것인가 고민하는 

 

순간부터 공간은 생기를 부여 받는다.

 

그리고 그 노력의 대가는 많은 이들의 행복지수를 높인다.

 

 

100년의 이야기가 허물어지는 데는 하루면 충분하다.

 

하루에도 많은 근대의 유산들이 넘어가고, 그 위에 새로운 건물들이 일어선다.

 

모든 건 의식으로부터 시작이다.

 

개발이 주는 이윤만을 볼 것인가, 옛 건물이 갖는 이야기를 들을 것인가?

 

그 물음의 궁극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떤 의식을 심어줄 것인가에 이르지 않을까.

 

글 : 박연옥 (경남 MBC 구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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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adidas

등록일2014-07-15

조회수25,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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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ins

| 2014-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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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 프롬나드 플랑테라고 검색하니,, 사진들이 많이 나오네요..
언젠가 한번 걸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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